글모음/넋두리
빠른 속도에 내 몸을 맡긴다는 것은, 내가 이 시대를 살고 있다는 증거일까?
에드시인
2011. 6. 18. 09:11
KTX에 처음으로 몸을 실었다. 아마도 지금 속도가 대략 200에서 300 km/h로 달리고 있을 것 같다. 군대에 있을 때 헬기를 타고 느꼈던 그 속도감과 비슷한 걸 보니, 빠르긴 참 빠른 교통 수단이긴 하다.
좀더 느린 일반 기차도 있고 버스도 있었는데 난 왜 이 교통편을 선택했을까?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시간을 줄이고자 하였을까나? 결국 도착한 곳에서 있을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일 등등에 대한 시간을 벌고자 이러한 좀더 빠른 수단을 선택했다고 본다. 하지만, 결국 비용도 더 들게 되고, 어떻게 보면 일의 입장에선 오히려 느린 수단을 선택하였을 경우, 그 만큼 나에게 주어지는 나만의 시간이나 여유 등등에 더 좋은 시간을 만들 수 도 있었는데, 난 결국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며 시대가 제시하고 있는 빠른 수단에 몸을 맡기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기차 안에서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는 모습도 결국엔 시대가 제시하는, 아니 어찌보면 강요 하고 있는 수단이라는 것을, 때론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마트폰? 정말 나를 스마트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 걸까나?
요새는 모든 일들이 속도의 경쟁 속에서만 평가 되어지는 것 같아서 불안하다. 차를 운전하다 보면 속도가 주는 쾌감 비슷한 것이 있다. 그렇지만 결국 빠른 속도가 지나치거나 순간의 방심에 의해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도 있다. 그런 걸 알면서도 우리는 계속해서 좀 빠른 것에 목 매인다. 경쟁이라고 하는 것이 시간을 두고 깊이가 있는 그 무엇을 겨루는 것이 아닌, 남보다 빠르게 어떻게든 먼저 내어 놓는 것이 승리다. 제품도 시장에 빨리 내 놓아야한다. 그리고 그걸 선택한 고객들에게 다시 한번 새로운 기술과 제품으로 주머니를 열어 달라고 강요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빠름이 주는 다음 결과물을 시장이 내어 놓았을 때 뿐이라는 명제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
과연 지구상의 인류는 다시 느림의 시대로 돌아 갈 수 있을까?

좀더 느린 일반 기차도 있고 버스도 있었는데 난 왜 이 교통편을 선택했을까?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시간을 줄이고자 하였을까나? 결국 도착한 곳에서 있을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일 등등에 대한 시간을 벌고자 이러한 좀더 빠른 수단을 선택했다고 본다. 하지만, 결국 비용도 더 들게 되고, 어떻게 보면 일의 입장에선 오히려 느린 수단을 선택하였을 경우, 그 만큼 나에게 주어지는 나만의 시간이나 여유 등등에 더 좋은 시간을 만들 수 도 있었는데, 난 결국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며 시대가 제시하고 있는 빠른 수단에 몸을 맡기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기차 안에서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는 모습도 결국엔 시대가 제시하는, 아니 어찌보면 강요 하고 있는 수단이라는 것을, 때론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마트폰? 정말 나를 스마트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 걸까나?
요새는 모든 일들이 속도의 경쟁 속에서만 평가 되어지는 것 같아서 불안하다. 차를 운전하다 보면 속도가 주는 쾌감 비슷한 것이 있다. 그렇지만 결국 빠른 속도가 지나치거나 순간의 방심에 의해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도 있다. 그런 걸 알면서도 우리는 계속해서 좀 빠른 것에 목 매인다. 경쟁이라고 하는 것이 시간을 두고 깊이가 있는 그 무엇을 겨루는 것이 아닌, 남보다 빠르게 어떻게든 먼저 내어 놓는 것이 승리다. 제품도 시장에 빨리 내 놓아야한다. 그리고 그걸 선택한 고객들에게 다시 한번 새로운 기술과 제품으로 주머니를 열어 달라고 강요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빠름이 주는 다음 결과물을 시장이 내어 놓았을 때 뿐이라는 명제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
과연 지구상의 인류는 다시 느림의 시대로 돌아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