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넋두리

요새 바보

에드시인 2014. 7. 15. 22:44

지난 일요일, 아내와 단 둘이 오랜만에 관악산에 올랐다.

한 낮의 퇴약 볕이 꽤나 산행을 힘들게 하였지만, 그래도 산에 가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기에 아무런 문제는 되지 않았다. 또한, 아주 짙은 것은 아니었지만 사방에 자욱한 안개가 풍경을 더 신비롭게 해주는 듯 했다.

최근 몇 달 동안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연락, 심지어는 이런 SNS 활동조차도 거의 하지 않고 지냈었다. 딱히 바쁜 일이 있었거나 어떤 의미가 있어서 잠적(?) 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나 혹은 새로운 것? 다른 것? 다른 장소? 이러한 다양한 것들이 머리속에 그득히 차 있었던 것 같아, 얼마전까지의 일상적 행동들이 제약을 받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딸들이 점점 자라고 공부라든가 기타 진로를 위한 준비들에 점점 많은 시간이 할애 되면서, 가족들과 특히 부모와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도 요 근래의 아쉬움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러한 아쉬움이 또 역시 나의 일상적 행동들을 제약하고 있었는 듯.

짧으면 6년, 길면 10년 후에 딸들이 모두 집을 떠나 독립을 하게 되고, 그 후론 아내와 단 둘이 보내야 하는 시간이 전부가 된다. (아! 우리의 바람일 뿐? 아이들은 그냥 눌러 앉으려 하려나?) 그 시기가 되면 아내와 같이 할 수 있는 일이나 시간을 보내기 위한 새로운 무언가를 미리 준비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보니, 더더욱 생각에 생각에 빠져드는....

뜬금 없지만, 내가 나를 생각해도 참 바보같다. 정확히 말하면 '요새 바보'다. 남들 다 하고 다 가지는 것들에 대한 욕심도 부족하고, 악으로 깡으로 성공에 눈이 멀어 기를 쓰는 것도 아닌... 요새 사람들이 보면 어느 정도는 바보 같아 보이지 않을까?

나보고 누가 그랬다. 회사를 취미로 다니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돈다고. (나도 정말 그러고 싶다. ㅠㅠ) 왜 내가 그런 모습으로 보였을까? 외적으로 돈 많은 티가 나지도 않을테고, 가진 자의 여유로움이 행동에 묻어나지도 않았을 터인데... 뭐, 그리 기분 나쁜 말은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바보같이 살고 있는 내 모습이 여유롭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올 여름엔 꼭 설악산에 가야겠다. 대청봉 꼭데기에 서면, 바보가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마음이 들것 같다.






'글모음 > 넋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0) 2014.07.23
혈압 120/80  (0) 2014.07.16
새로운 직장 첫 출근  (0) 2014.02.17
햇마늘 찧는 날.  (0) 2013.06.09
작약꽃 앞에서 아이들  (0) 2013.06.05